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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권의 역사

    2012.07.10 16:24:56
  • 인권의 역사

    [1] 인권의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들

    인권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준다.

    ①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의 ‘인권’을 보는 시각에는 차이가 있으며, 양자의 긴장관계 변화에 따라 ‘인권’의 실질적 내용은 변해왔다. 지배세력은 ‘인권’을 가급적 형식적으로 그리고 강제력 없는 ‘강령’으로 취급하려고 해왔다. 한편 피지배세력은 그렇게 형식화되고 유명무실해지려는 ‘인권’을 실질적 권리로 세우면서 동시에 새로운 권리를 계속 받아들임으로써 ‘인권’개념의 지평을 넓히려고 노력해왔던 것이다. 이런 양자의 힘이 충돌하는 오랜 세월 속에서 빚어져 온 것이 바로 오늘날의 ‘인권’인 것이다. 따라서 ‘인권’은 헌법이나 조약이나 선언에 항목을 써넣기만 하면 확립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배신 당하면서도 권리를 회복하기 위하여 피를 흘렸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물인 것이다.
    인권은 거대한 세계사 속에서 살아 숨쉬는 개념이다.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권의 역사는 끝없는 여로(旅路)이다.

    ② 현재와 같은 자유권 중심의 인권체계는 서유럽 근대사회에서 태어났다. 또한 인권체계는 時空을 초월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특정한 역사 속에서 특정한 사회세력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
    보통 새 시대에 새 법이 생기는 과정은 이렇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르는 사회적 요구 → 기존의 실정법에 항거하는 ‘자연법’ 주장 → 혁명 → 현실 변화 → 변화된 현실에 맞는 새로운 실정법 탄생…. 인권의 ‘이상’과 인권의 ‘현실’ 사이의 모순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보다도 근대 자본제 국가의 성립과 함께 시민혁명의 이데올로기였던 ‘인권’이 실정법제도인 ‘인권’으로서 정착되어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왜소화되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인권 개념은 근대 자본제 국가의 성립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 및 시민의 권리선언>(프랑스인권선언)은 이렇게 탄생했다. 1789년,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이었다. <사람 및 시민의 권리선언>은 엄밀하게는 ‘법’이 아니었지만 여러 인권선언 중 전형적인 인권선언이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인권’으로 알고 있는 것의 기본 골격을 갖추고 있다.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도 이것을 본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인권의 역사는 약 200년을 헤아린다고 볼 수 있다.

    [2] 前史

    ‘마그나 카르타’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권리를 보장한 최초의 제도는 영국에서 출현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1215년의 ‘대헌장’(Magna Carta Liberatatum)이다. 대헌장은 성문법에 의해 왕권을 규제한 최초의 문서라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모두 63조로 된 ‘대헌장’의 주요특징은 다음과 같다.
    ① 봉신에 대한 불가침영역의 보장
    ② 봉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일정하고도 적정한 구제절차 보장
    ③ ‘대표없이 과세없다’는 원칙 승인
    ④ 법에 의한 왕권의 규제
    대헌장 이후, 수없이 배신과 투쟁에 의한 회복을 거듭하면서 절대적이고 신성불가침의 권리였던 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입헌주의적 전통이 수립되어갔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보편적이고 침해할 수 없는 권리와 자유를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15, 16, 17세기 경제발전과 ‘인권’의 탄생
    인간의 인간에 대한 예속을 전제로 하는 신분제도 하의 여러 관념은 ‘인권’과 도저히 조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근대 이전의 ‘자유’는 보편적 인권이 아니라 신분적 특권이었다. 인권이 사회의 일반원칙으로서 등장하고 하나의 요구 및 현실로서 인식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봉건제적 소유관계에 변동이 일어나야 했다. 즉 재산의 획득과 소유에 관한 모든 사람의 권리는 원칙적으로 평등하다는 인식이 반드시 일반화되어야 했다. 15-6세기 특유의 경제발전 (시민계급에 의한 자본의 축적)과 그에 따르는 정치상황의 변화 속에서 봉건적 특권계급의 압박과 착취에 시달려온 시민계급은 ‘자유’를 주장하고 ‘법 앞의 평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시민혁명의 시작이었으며 인간해방의 새로운 단계의 도래였다.

    ‘초기독점’과 ‘영업의 자유’ (시민혁명의 프로세스)
    17세기는 영국 헌정사상 획기적인 시기였다. 그것은 봉건제적 생산양식이 자본제적 생산양식으로 이행하던 시기였으며, 절대왕조가 무너지고 근대 의회정치가 확립되어가는 과정에 해당한다. 이 세기에 ‘권리청원’(1628), ‘인신보호법’(1679), ‘권리장전’(1689), ‘왕위계승법’(1701) 등이 속속 출현했다.
    중세 말 이후 상업 발달로 인한 전기적 자본의 집중은 영국(에리자베스), 프랑스(꼬르베르), 독일(프리드리히대왕)에서 절대왕제와 유착한 ‘초기독점’이라는 경제사적 시대를 만들어냈다. ‘초기독점’의 특징은,
    ① 중세적․길드적 독점의 극지성을 벗어나 national한 규모로 이루어진 점.
    ② 매점(買占)독점이자 소생산자들에 대한 상업자본의 지배라는 점
    ③ 전기적 자본 본래의 활동분야인 원격지상업에 있어 전형적으로 형성된 점
    (소금, 유리, 비누, 화약, 종이, 무기, 그리, 놋 등등)
    ④ 주인공은 산업자본가가 아닌 특권적 政商 혹은 寵臣들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비 산업적 독점형태는 “근대적 산업의 자유=경제적 자유주의”를 요구하는 신흥사업자본에 저항에 의해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다. 자생적 산업자본의 성장이 national한 절대주의의 경제적 규제에 national하게 항거하게 되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었다. 즉 17세기 반 독점운동은 단순히 ‘초기독점’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초기독점’을 지탱하는 권력기반(절대왕조)에 대한 권력투쟁이었다. 이것은 국왕과 의회 사이의 항쟁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17세기 영국의 이와같은 저항은 구체적으로는 “신민의 자유에 반하는” 혹은 “영업의 자유에 반하는”이라는 용어로써 독점을 비판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것은 마치 현대를 사는 우리가 “위헌” 혹은 “인권침해”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주장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초기독점’은 ‘명예혁명’을 획기로 하여 최종적으로 해체되었으며 ‘영업의 자유=경제적 자유’가 지구상에 성립하게 된다. 이와같이 영국 시민혁명기의 ‘인권’ 성립은 국가권력과 그 지배를 받는 인민과의 대항관계 속에서 태어났다. ‘자연권’ 사상이나 ‘사회계약설’이 “영업의 자유”를 외치는 신흥산업자본가들에게 더없이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


    [3] 제1세대의 인권(자유권)

    자유권 중심의 인권개념
    근대 시민혁명 직후에 확립된 인권으로서 공통된 성격은 국가의 부작위[不作爲]를 요구하는 무형적인 권리라는 점이다. 애초에 신체의 자유, 정신활동의 자유 등이 조항은 있었으나 그 시대에 가장 강조된 것은 경제활동의 자유, 즉 재산권, 노동의 자유, 계약의 자유, 영업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이었다. ‘평등’의 개념은 있었으나 이것은 사회․경제적인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시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평등하게 자유를 누린다”는 의미였다.

    자유권적 인권의 탄생- 자본주의 발전의 동력
    근대 시민혁명의 슬로건이 ‘자유’ ‘평등’ ‘박애’였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개인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자유롭고 평등하다. 이것이 근대 시민사회의 전제였으며, 이런 전제는 개개인이 상품을 교환하는 평등한 주체라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대전제와 조응하는 것이다. 중세 이전 사회구성체의 여러 이해관계를 표시하는 ‘계급’이라는 개념은 ‘신분’이라는 개념과 결합되고 있다. 그러나 근대사회에서는 형식적으로 ‘법 앞에 평등’인 자각적․주체적 인간을 전제로 하여 그 형식을 통함으로써 비로소 계급적 이해가 관철된다. 이리하여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보편적(“모든 사람”) 인권을 선언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배신 당한 ‘자유․평등’의 꿈
    봉건체제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시민혁명이 이루어낸 ‘자유’ ‘평등’의 이념은 분명 인간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외침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혁명을 주도했던 시민계급의 주된 관심사가 자본주의 확립과 발전에 필요한 소유권과 경제활동의 보장에 있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산업자본의 지배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평등’의 내용이 형식화(‘법 앞의 평등’) 됨과 동시에 ‘자유’의 내용은 변질된다. 즉 사상․표현․신체 등 정치적 ‘자유’는 하위규범에 의하여 엄하게 제약되고 경제활동 및 재산의 ‘자유’는 한결같이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자본주의적 ‘합리성’)
    근대시민혁명은 자본주의의 전개를 확보하는 사회혁명이었으며, 근대 시민헌법은 그를 위한 수단이었다. 그것은 분명 인간해방의 새로운 단계였지만 “착취사회 내부에서의 진보일 뿐”(Karl Marx)이었으며, 보기에 따라서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부한 속성을 가진 ‘인간’이 해방된 것이 아니라 ‘노동력(상품) 소유자로서의 인간’만이 해방된 것이다.

    ‘보편적 인권’은 없다?
    봉건적 특권이 특정한 신분을 전제로 했던 것과는 달리, 시민혁명의 과정에서 생겨난 ‘인권’의 두드러진 구조적 특징은 그 형식의 고매한 추상성․보편성이다. 이것은 권리주체의 超계급적 표현에 무엇보다 잘 드러나 있다. 즉 “누구나 …” 혹은“무든 사람은…” 등등. 그러나 이런 보편적 표현형식은 실질적으로 계급을 넘어서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기커녕 오히려 시민사회 내부의 경제적 약육강식과 인간소외를 은폐하는 기능을 하면서 인권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형해화 시켜왔던 것이다.

    현대 ‘인권’ 개념의 뿌리
    이렇게 왜소해진 ‘인권’은 서유럽 사회에서 제도로서 정착되어갔고 약간의 변형 (프로그램규정으로서의 약간의 사회권 조항 추가)을 겪은 후 기본적으로 1948년 ‘세계인권선언’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이 흔히 ‘인권’으로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인권체계인 것이다. 이런 ‘인권’개념에는 첫째로, “‘인권’의 길을 가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길을 가는 것이다”라는 인식과 둘째로 “자유와 평등이란 어차피 현실의 것이 아니며, 인류사회의 ‘강령’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체념, 그리고 셋째로 “‘자유권이 진짜 인권이다.”라는 관념이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4] 제2세대의 인권 (사회권)

    사회권이란 무엇인가?
    이 권리에 특징적인 것은 분배정의가 실현되기 위하여 국가에 작위[作爲]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유형의 가치에 대한 요구이기 때문에 자원의 배분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권의 탄생
    근대적 인권 이념의 기초를 이룬 ‘豫定調和’적인 발상은 자본주의의 전개와 더불어 가진 자에게는 더욱 유리하게, 가난한 자에게는 더욱 불리하게 작용하여 몸서리쳐지는 사회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이라는 비인간적 노동조건, 실업과 저임금으로 인한 빈곤, 아동노동․빈곤․질병․열악한 노동조건에 따른 평균수명의 저하, 문맹(文盲), 범죄의 증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이 인간소외의 현실에 대하여 실질적인 생존권을 확립하려는 격렬한 투쟁은 있었고 이것을 체제내화 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권’이라는 권리 체계가 탄생한 중요한 원인은 무원칙한 노동착취에서 오는 노동력의 피폐현상을 피함으로써 자본의 재생산 과정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회권의 보장 그 자체는 反자본주의적이 아님은 물론, 현대에 있어서 안정된 최대이윤을 위하여 불가결의 조건인 것이다.
    사회권은 현실의 사회에 있어서 구체적인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권리주체로 하고 있다. 이들 권리는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평등을 요구하는 것이며, 19세기 초 프랑스의 생시몽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된 후 혁명투쟁과 사회복지운동으로써 다양하게 추진되어온 사회주의의 전통에 주로 그 근원을 가지고 있다. 또한 6월사건 (1848년)과 파리 꼼뮨(1871년)을 통해 부르주아지와는 다른 자신의 계급적 이해[利害]를 자각해간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우리가 오늘날 사회권을 ‘인권’으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다.

    사회권의 발전
    1870년대에 서유럽 사회에 보급되기 시작한 사회정책은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운동에 대항하기 위한 체제수호적 정책이었다. 즉 1870년대에 전 유럽을 휩쓴 불황, 그로 인한 대량 실업사태, 사회주의사상의 급속한 확산의 결과 한편으로는 가혹한 단속과 처벌,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사회정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사회주의운동의 확산에 대한 대책으로서 후발 자본주의국가에서는 치안대책이 중심을 이루었으며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은 사회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후자의 경우가 현대 복지국가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바이마르 헌법
    사회권은 두 갈래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1917년 러시아혁명과 1919년 독일 ‘바이마르 헌법’이 그것이다. 러시아혁명은 사회권의 사회주의적 대안이었으며, 자본주의국가에서 사회권적 기본권을 처음으로 헌법에 보장한 ‘바이마르 헌법’은 현대복지국가의 이념을 구체화했다. ‘바이마르 헌법’은 러시아혁명 후 독일 좌파가 11월혁명에 실패하자 사회민주당 우파와 여러 부르조아 정당의 연합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다. 이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인 ‘생존권’은 다음과 같다. (제5장 [경제생활] 제151조)
    “경제생활의 질서는 모든 사람에게 인간의 이름에 값하는 생활을 보장할 목적을 갖는 정의의 원칙에 적합해야 한다. 이 범위 내에서 개인의 경제적 자유는 확보되어야 한다”
    이 헌법은 노동자의 단결권을 인정하되 쟁의권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동의 윤리적 의무를 강조함으로써 쟁의를 간접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사회권, 그 기망과 희망
    이 새로운 권리는 19세기부터 큰 힘을 떨쳤던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대항책으로서 자본주의국가 내에서 서서히 확산되어갔지만 그것은 물론 완전한 인간의 ‘복권’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자본주의국가에서 현대 복지국가의 이념은 구체화되었지만 소외된 민중들의 ‘생존권 찾기’가 충분히 실현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바이마르헌법’의 생존권은 ‘권리’로서 승인된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규정’으로서 해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이상을 드높이 외치는 많은 현대국가에서도 여전히 인권 개념의 중심은 전통적인 자유권이며, 사회권(생존권) 실현을 위한 실효성 있는 수단을 갖지 못하고 있다. 그 인권체계란 결국 여전히 인간을 소외시키는 자본의 재생산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바로 그 인권체계라는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현대 복지사회는 기본적으로 사회주의국가들과의 냉전구조 속에서 발전한 사회이며, 그것은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경제적 패권 하에서의 서방 나라들의 ‘평화의 처방전’이라는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경제성장에 의한 복지국가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현대 복지국가의 ‘사회권’이라는 것은 상당히 기만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실질적인 평등권을 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을 소외로부터 해방시키는 것도 아닐 것이다. 사회권의 보장으로써 우리는 서구 근대사회의 역사적 제약을 지니고 있는 인권체계를 ‘지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권체계를 ‘지양’할 역사적 전망이 쉽게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조건에서 인권운동으로서 사회권의 실질적 권리화를 위한 노력은 현시점의 최대의 과제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전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자유주의’의 횡포를 떠받치고 있는 ‘자유권’ 중심의 전통적 인권개념에 도전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거의 유일한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권을 실효성 있는 인권으로 재창조하는 일, 이것은 21세기에 인권의 역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 중 하나다.

    [5] 새로운 도전, 제3세대 인권의 등장

    2차세계대전 이후에는 또한 이전 시대의 인권의 개념이 서구사회를 지배하는 백인․남성․자본가계급의 관점에 근거하고 있다는 자각(自覺)이 성장하였는데, 이러한 자각의 주체들은 바로 직․간접적 식민지배하에 있던 제3세계 국가들과 여성, 유색인종, 소수민족 등이었다. 이들은 민족해방운동(자결권 확보운동), 흑인민권운동, 페미니즘운동 등의 사회운동을 통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승인과 보편적 권리의 보장을 실현해 나가고자 하였다. 이들의 정치적 요구에 대응하여 등장한 것이 이른바 집단권이라고 불리는 제3세대 인권이다.
    제3세대 인권은 여성에 대한 성적 차별과 인종차별, 신생독립국가를 위주로 구성된 제3세계와 중심부 국가들 간의 빈부격차(남북문제), 국제무기경쟁과 핵전쟁의 위협, 그리고 생태위기 등의 국제문제에 대한 각성으로부터 나온 인권의 새로운 목록이다. 이 새로운 권리들은 1, 2세대 인권과는 달리 국가와 개인의 관계 속에서 파생되는 권리가 아니라 집단적 권리 혹은 연대의 권리라는 점에서도 이전 세대의 인권과 구분된다. 제3세대 인권은 아직까지 체계적인 인권의 한 분야로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지만, 국제정치와 경제, 문화적 변화의 과정 속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논쟁을 통해 확립되어 가고 있다.

    인권의 역사는 ‘끝없는 여로’이다. 그것은 첫째로 과거에 당연지사로 인식되어온 일들의 정당성에 회의가 일고 그것을 부정하는 가운데 새로운 권리의식이 발생하는 까닭이요, 둘째로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인간의 자유나 생존에 관한 새로운 문제의식이 발생하는 까닭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권리 외에 장애인의 권리, 프라이버시의 권리, 알 권리, 아동의 권리, 동성애자의 권리 등등 많은 권리가 2차대전 이후에 크게 부각되었다.

    출처 : 다산인권센터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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