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때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가 퉁명스럽기만 하다. "내말 쫌 들어보이소! 언론 때문에 세상이 다 망한다아인교? 방송에서 맨날 명절
증후군이니 뭐니 떠들어싸니 여자들이 추석에 일하기 싫다고 저 난리아인교? 매일 짓는 밥인데 명절에 한 이틀쯤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데 그것을
싫다카믄 그건 인간도 아이제! 안 그렇소?"
나는 결혼한 지 7,8년 될 때까지 명절때마다 참 힘들었다 누가 명절 잘 보내라는
덕담을 하면 욕하는 소리로 들렸다. 이번 명절에는 학교 일직이나 걸리라고 빌 정도였으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이 많아서 괴로워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시부모님 끼니까지 챙기면서 어린 아이 들처 없고 튀김 한다, 전을 부친다, 빠진 재료 사러 시장에 뛰어간다, 정신이 없는데
남편은 오랜만에 고향 내려온 친구들과 밤 늦도록 놀다 들어오곤 했다. 시댁어르신들은 별 야단도 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작년에 <청소년성매매퇴치 성교육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성매매와 관련된 사람들과 만났다. 한 매춘 여성의 말.
"언제 손님들이 많이 오는 줄 알아요? 바로 명절 때예요. 여자들은 차례음식 장만하는 바로 그때죠." 설마했지만 명절 때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을 보니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었다.
이번 추석은 특별하다. 9월 23일부터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는 그 찬반토론이 한창이다. 집창촌에 손님을 데려다 주고 1인당 2만원씩 받던 택시기사들은 성매매특별법의 시행으로 서민경제가
죽어난다고 정부를 호통치고 있고, 성매매여성 수백명이 생계를 보장해 달라는 시위를 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 법으로 집창촌을 죽이면
성매매는 주택가로 음성적으로 스며들고 그나마 일년에 한 번 하던 성매매대상의 성병검진마저 없어져 국민건강을 이제 어쩔 것이냐, 시일야방성대곡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발적인 성매매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성매매특별법은 아무런 실효가 없어 일 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욕은 남자의 본능인데 이제 이걸 못하게 됐으니 길거리의 당신 아내와 딸들이 강간을 당할 거라고 협박을 하는 사람도 있고, 차라리 공창제도를
두어 합법적으로 장사하게 하고 세금 내고 건강진단도 받게 해 국민건강을 지키자고 애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 사람 판 사람 모두
처벌하던 예전의 윤락행위방지법이 있었지만(결과적으로는 양쪽에 별다른 벌을 주지 않게 됨)달라진 성매매특별법의 큰 특징은 우선 성매매 업주를
강력하게 엄벌에 처한다는 것이다. 10년 이하의 징역에 1억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중형을 받게 된다. 더 치명적인 것은 성매매로 인해 얻은
금품이나 재산은 몰수, 추징한다고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하고 피해여성의 인권을 철저히 보호한다는
것이다. 성매매 피해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성매매와 관련된 채권은 형식이나 명목에 관계없이 무효가 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성매매
피해여성이 업소에서 도망쳐 나오면 경찰은 사기죄 명목으로 피해여성을 업주에게 다시 넘겨주었으니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다.
성매매하는 여자들이 있어야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온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참 지독한 욕심인 것 같다. '그
여자들은 자발적이니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역시 참 폭력인 것 같다. 마찬가지로 명절에는 여자들이 한 이틀 참고 일하기를 요구하는 것 역시
욕심이고 폭력인 것 같다. 우리 학교 머시마들은 원치않을 때 발기가 되면 애국가를 부르거나 아버지 얼굴을 떠올리며 조절한다고 한다. 얘들도
조절하며 사는데 이제 남의 탓은 그만하고 내 몸은 내가 조절하며 살자.